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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티손의 두 얼굴 - 희망 뒤에 숨은 부작용
오승준 / 부속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당뇨합병증·갑상선
흔히 '스테로이드'라고 알려진
코르티손(cortisone)은 현대의 치료혁명을 낳은 두 가지약물 가운데 하나이다. 첫
번째의 항생물질이 외부의 적, 즉 박테리아를 물리쳤다면, 코르티손은 스스로 외부로부터의
육체적 또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물질이다. 코르티손은 스트레스와
염증에 대한 인체의 반응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치유력을 보여준다. 코르티손의 발견은
항생물질과 함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로서 그로부터 거의 20년 전에 시작된 일련의
행운과 우연적 사건들 덕분에 일어날 수 있었다.
1948년 7월 26일 가드너 부인이라는 29세의 젊은
여성이 병원에 입원하여 필립 쇼월터 헨치 박사(Dr. Phillip Showalter
Hench)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류마티스관절염으로 5년 이상 고통받고 있었고
병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헨치 박사는 동료 생화학자 에드워드 켄들(Edward
Kendal)에게 도움을 청했다. 켄들은 그에게 머크(Merk)라는 제약회사에서
부신에서 분비되는 다량의 '화합물E'를 합성했다고 알려주었다. 이 화합물E가 나중에
코르티손이라고 알려지게 된다. 다음날 아침 속달항공우편으로 소량의 화합물E가
도착하였다. 헨치박사는 투여 2일 만에 환자가 침대 위에서 편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고, 근육이 훨씬 덜 아프게 되었고, 4일 후에는 3시간동안 시내로 나가 쇼핑을
했고, 그 뒤 피곤함을 느꼈지만 그것은 결코 통증이나 뻣뻣함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환자의 기록은 1949년 4월 그의 동료 내과의사들에게 컬러사진과 함께 치료 전의
변형된 관절 사진과 치료 후의 환자들이 모습을 보여주었고, 동료 의사들은 기립박수로
그를 환영하였다고 한다.
이 물질을 발견한 에드워드 켄들은 메이오클리닉의 생리화학
교수였다. 1914년 당시 28세였을 때 그는 갑상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분리해낸
경험이 있었다. 그 이후 또 다른 호르몬,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이 발견되어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자 자연스럽게 호르몬 결핍과 관련된 다른 질병에 대해 엄청난 관심이
일었다. 여기에는 부신에 생기는 에디슨병(Addison's disease,
부신피질기능부전)이 포함되어 있었다. 부신은 신장의 윗부분에 얹혀 있는 기관으로 부신이
파괴되면(과거에는 결핵으로 잘 파괴되었음), 점차 쇠약해지고 무기력해져 6개월안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 에디슨병에 걸린 환자는 고양이 부신으로 만든 화합물로 치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정확한 성질을 알 수 없었다. 1936년에
이르러 그는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화합물 A, B, E, F라고 불리는 몇 가지 서로
다른 화합물을 분리 추출해 냈다. 그리고 헨치는 이 물질 중 화합물 E를 류마티스관절염
환자의 치료에 사용한 것이다.
헨치가 환자들의 치료 전과 치료 후의 상태를 공개한
1949년의 회의 뒤에 이에 관한 뉴스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가자, 코르티손은 진짜
'기적의 치료약'으로 소개되었다. 'The Times'의 의학담당기자는 "단 며칠의
투약 뒤에 환자들은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걸었고, 관절이 아프거나 부어오르는 증상도
사라졌다."고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노벨상이 이렇게 빨리 수여된 적이 없다고 한다.
다음 해 헨치와 켄들은 스톡홀름으로 가서 노벨의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기쁨과 기적도
잠시였다. 1950년 영국의 류마티즘 학자인 오스월드 세비지는 메이오클리닉에 있는
헨치를 방문했을 때 헨치가 '계속 늘어나는 부작용에 대한 보고에 낙담해 있었다.'라고
했다. 류마티스관절염의 치료약을 코르티손에 대해 보인 열광적인 반응은 점차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 후 이 호르몬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꼭 필요한
경우에는 매우 중요한 약을 사용되지만, 그 경우를 넘어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할 경우 독과
같이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대사에서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유명한
대통령의 하나인 케네디 대통령도 사실 에디슨병 환자였다. 그래서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약간 검은 피부빛을 띄고 있었다. 케네디 역시 코르티손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이미
젊은 나이에 사망을 하였을 것이고 미국의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으로 기록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의약분업이 되기 전, 소위 잘
나간다는 약국들 중에는 부신피질호르몬인 코르티손을 무분별하게 사용한 곳들이 있었다.
돈도 돈이었지만, 단기간에 쑤시고 아프던 관절이 며칠 만에 아프지 않게 되고, 밥맛도
좋아지니 정말 명약을 파는 곳이 있다는 소문으로 유명하게 된 약국이나 의원들이 있었다.
관절염은 좋아질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비만해지고, 팔다리는 가늘어지며,
얼굴은 달덩이처럼 변하는 쿠싱증후군이 발생하였다. 일단 이 상태가 되면 혈압도 오르고,
당뇨병이 발생할 수 있고 위궤양이나 다른 이차 세균감염도 잘 발생하고 골다공증도 쉽게
와서 뼈가 쉽게 상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원래 몸에서 생산되던
부신피질호르몬도 생산이 되지 않아 장기간 동안 또는 영구히 코르티솔을 복용하면서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곤 했다.
아직도 병실에는 과거 무분별한 코르티솔의 남용에 의해
의인성 쿠싱증후군이 되어 평생 치료를 받으며 지내고 있는 연세가 많은 환자들을 종종 볼
수 있어, 호르몬 발견의 혜택과 더불어 무분별한 약제의 사용이 초래하는 폐해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어 몇 자
적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