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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일 | 부속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불면증,
중년기 우울증
최근에 본 여성 환자 중에 남편이 부정한 짓을 하는
대상으로 온 집안 식구를 다 의심하는 경우가 있었다. 딸, 며느리, 조카 등 모두가
남편과 그렇고 그런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는 환자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척보면 모르나요. 며느리가 밥상을 차릴 때의 태도를 보면 시아버지와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어요. 이 창피스러운 일을 어디에 가서 말하겠어요?" 하며 한탄을
하는 것이다. 가족들은 "저런 말을 하는지가 벌써 5년이 다 돼갑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해요."
편집증 행동의 공통점은 이와 같이
허무맹랑한 이유를 근거로 배우자의 부정을 확신하는 경우가 의처증·의부증에 해당된다.
이러한 증상을 부정망상 또는 질투망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병명으로는 망상장애, 편집장애
또는 편집증이라는 진단명을 쓴다. 이러한 환자들이 보이는 행동에는 대체적으로 공통적인
것이 있다. 출근하는 남자의 경우에 수시로 집에 전화를 건다. 아내가 집에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시장에라도 가기 위해 잠시 집을 비워 전화를 받지 못하면 "역시 내
생각이 맞아. 지금 어디에 가서 누구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이야." 이렇게
믿어버린다. 그래서 아내는 잠시도 집을 비우지 못한다. 남편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한번이라도 놓치게 되면 그날 밤에는 밤새도록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믿지 못하는 병은 왜 생기는
것일까? 흔히 자신이 과거에 문란한 성생활을 했던 사람이 나중에 배우자를
의심하는 병에 걸리기 쉽다고 하는 말도 있다. 내가 그랬으니까 너도 그렇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연관성은 중요하지 않다. 이런 병을
가진 사람의 배우자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비록
바람을 피우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무언가 의심받을 짓을 한 것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맞는 말이 아니다. 이러한 병은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적 이론에서는, 내재된 동성애적 성향이 이런
병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또는 어렸을 때 기본적인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된다고 하기도 한다. 뇌에서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의 활성의 변화가 이런 병을
일으킨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가설의 단계일 뿐 확실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고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평소의 성격과 이러한 병의 발생에 관련이 많다는 것이다.
즉 의심이 많은 성격의 소유자가 이런 병에 잘 걸린다는
것이다. 매사에 의심이 많고, 믿지를 못하고, 잘 따지기를 좋아하고, 집착이 심하고,
남에게 시비를 잘 걸고, 그래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편집증에
잘 걸린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성격을 편집증적 성격이라고 한다.
본인 보다 가족이 더 고통 문제를
심각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병이 한번 나타나면 치료가 어렵다는 것이다. 치료를 해도
반응이 안 좋은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회복되기는 어렵고,
평생동안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병으로 인해서 환자 본인만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배우자는 더한 고통을 받게 된다. 배우자 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따라서
고통을 받는다. 집안 전체가 난가가 되는 것이다. 때로는 이러한 병의 결과로 난폭한
범죄행위가 파생되기도 해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환자는 일단 입원해서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단기간의 입원으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대개 장기간의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 장기간 입원치료하다 보면 완치되는 경우도 있고, 완치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증상이 많이 완화될 수 있다.
입원치료해서 어느 정도 호전이 되면 그것으로 치료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통원치료를 계속해야 한다. 약물도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하고, 정신치료도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 오랫동안 치료가 꾸준히 계속될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이다. 따라서 가족들이 해야 할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치료가
꾸준히 계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연애 때 극진한 사랑이 결혼 후 의심으로
발전 예방책으로 이러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과의 결혼을 피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나 이 또한 쉽지가 않다. 결혼 전에 데이트하는 기간에는 대개 눈이
멀게 되기 때문이다. 연애기간 중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사람, 하루에도 몇번씩 지나칠
정도로 전화를 자주하거나 자주 만나려는 사람,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알아보려는
사람, 나의 과거를 속속들이 알려고 하는 사람, 나의 말을 잘 믿지 못하고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 등 이런 사람들 중에 결혼해서 살다 보면 서서히 의심하는 증세로
발전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연애기간 중에
눈이 멀었을 때에는 이런 행동이 극진한 사랑의 표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편집적 성격이 심한 사람은 전문의와 상담해서 필요하면
정신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예방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배우자에 대한
의심이 지나치다고 생각되면, 창피하다고 해서 덮어두려고 하지 말고 즉각 전문의와
상의해서 조기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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