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로서
아마 가장 많은 질문을 받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약을 먹으면서 음주가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어차피 술이란 것이 생명유지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기호식품인 만큼,
애주가들에게는 건강에 못지 않게 음주의 즐거움도 중요한 삶의 요소이기에 이런 질문은
불가피한 것일런지도 모른다. 독자들도
아시겠지만,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가 화두에 오르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많이만 먹지
않는다면 괜찮다며 지나갔을 것이다. 사실 필자도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술에 대한
강한 의지가 보이는 사람 앞에서 딱 잘라 안된다고 말했다가는 '너 돌팔이구나'라는 눈빛을
받기 일쑤이기 때문에 적당히 자제시키는 선에서 넘어가곤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같이 먹어서는 좋을 것이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위험할 수도 있다. 예를들어
신경안정제 수면진정제 해열진통제 항히스타민제 항생제 고혈압치료제 간질치료제 등은
술과 같이 먹을 경우 위험하다. 술이 체내의 모든 대사기능을 저해하는 작용을 하게 되므로
약의 대사도 저해를 받게 되고, 따라서 약의 분해 및 배설이 늦어져서 약효가 아주 강하게
나타나므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해열진통제인 '타이레놀'의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은 술과 같이 먹을 경우 간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
필자도
3년전에 타이레놀이 포함된 감기약을 먹은 것을 깜빡 잊고 회식자리에서 술을 여러 잔
마셨다. 평소의 주량에 훨씬 미달되는 양이었기에 정신도 말짱했고, 신도림역에서 내리는
필자는 별 생각 없이 회기역에서 전철을 타고 잠깐 졸았다가 눈을 떠보니 제물포역이었다.
무려 33정거장을 눈 한번 못뜨고 잔 것이다. 좀 멀긴 해도 1시간 반이 채 안 걸리는 귀가길이지만,
그날은 3시간 반만에 집에 들어갔다. 정말이다.
최혁재·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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