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영국의 의사는 당뇨병을 "다뇨성 악성 질환"이라고 불렀지만,
이미 기원전 에짚트시 대에서부터 갈증과 다뇨가 있는 병을 기록하고
있다. 기원 1세기 아라테우스(Arataeus)는 당뇨병에서 소변이 많이 나오고
체중이 줄어가는 보고 "팔다리와 근육이 소변으로 녹아 나가는
병"이라고 기술하였다. 고대 의사들은 당뇨병 환자의 소변에서
단맛을 발견하고 소변에 당이 나오는 것을 알았다. 그 뒤에 당분이 없는
소변이 많이 나오는 뇌하수체 질환인 요붕증과 구별 하기 위하여 꿀과
같이 달다는 말이 첨가되어 당뇨병(diabetes mellitus)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당뇨병은
한때 설탕병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으며, 음식물 특히 당질에서 만들어진
포도당의 대부분이 세포 내로 흡수되지 못하고 혈액 속에 증가하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당뇨병을 검사하기 위해 의사가 처음으로 취한 수단은 오줌의
맛을 보는 것이었다. 19세기초에 이르러, 화학적인 검사법이 발전되어
소변의 당을 검출하고, 당의 정량이 가능하게 되어 요당을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요당이 검출되는 사람은 모두 당뇨병 환자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것은 소변으로 당이 배설되는 질환이 당뇨병이외에는 매우
드물어 다른 병으로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당뇨병은
요당이 존재하는 상태로 정의되기도 하였으며, 의사는 소변 검사로 당을
검출하여 당뇨병 환자로 진단하였다.
당뇨병의
원인에 대한 단서가 잡힌 것은 민코우스키가 개의 췌장을 완전히 제거하자
소변으 로 당이 나온 것에서 알려졌으며, 1921년 반팅과 베스트는 췌장
추출물이 혈당을 내리는 작용 을 발견하게 된 된 것이다. 반팅과 베스트의
췌장 추출물은 그후 더욱 정제되어 인슐린 주사제 로 개발되었으며,
췌장의 손상에 의한 인슐린의 부족이 당뇨병의 원인으로 알려졌다. 그후
혈중 인슐린을 측정하게 되면서 비만한 사람에서 생긴 당뇨병에서는
인슐린의 부족보다는 인슐린의 작용이 잘 안되는 수용체의 개념이 도입되어
인슐린비의존형 당뇨병의 본체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후
당뇨병이 가난하고 몸이 마르며 쇠약한 사람들 보다는 유복하고 영양상태가
좋은 사람 에서 발병되는 것이 알려졌으며, 20세기초에 당뇨병은 특히
돈이 많은 부자 유대인에서 많이 발견되었고, 선진국 그 중에서 미국이나
독일에 많은 환자가 발견되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살림이 넉넉해짐에
따라, 사람들의 영양상태가 좋아졌고, 예방주사와 항생제가 도입되고,
위생 관리에 의해 전염병에 의한 사망률이 감소하기 시작한 반면, 당뇨병의
발생빈도는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1920년까지 선진 공업국에서 당뇨병
환자의 비율은 전체인구의 2.0퍼센트 정도였으나 현재에는 10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정제된 순수 인슐린이나 사람 인슐린 구조와 같은 휴먼 인슐린이 치료에
이용되며 인슐린주사를 간편하게 한 펜형 주사기나 인슐린 펌프 등의
치료방법에도 많은 발전을 가져 오고 있다. 향후 멀지 않은 장래에 당뇨병을
일으키는 당뇨병 유전자가 발견되면 혈당이 올라가기 전에 당뇨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예방하며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개발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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